요르단 전의 패배 이후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고 경질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저 또한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과연 이 감독을 선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클린스만은 스타선수들이 즐비한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 중 한 팀으로 뽑히는 바이에른 뮌헨의 안 좋은 역사를 새로 갈아치운 감독이었으며 그의 전 소속팀이었던 헤르타 베를린에서는 팬들과의 소통 시간에 갑자기 "나 감독 안 할 거야"라고 하면서 나간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정말 많은 기자들과 축구 유튜버, 관계자들은 한 입으로 "이 감독은 절대 선임하면 안 된다"라면서 극구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정식으로 감독 선임이 되었고 독일은 우리나라에게 "RIP(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을 했었죠. 오늘 그가 이룬 업적(?)과 감독 스토리를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의 대기록 정리
본격적으로 그의 업적을 알아보기 전에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썼던 기록을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충격주의!>
1.90분 기준 1승 1무 4패
2. 요르단전 조별 리그에서 멀티골 실점은 2007년 바레인전 1-2 패배 이후 처음이며 이 사이 조별리그 11경기 4 실점
3. 말레이시아 역대 최조 아시안컵 본선 3 득점
4. 호주전 아시안컵 역대최초 전반전 슈팅 0
5. 한국 유효 슈팅 0은 아시안컵 최초
6. 아시안컵에서 치른 6경기 중 5경기에 상대에게 리드 허용
와 이렇게 보니 진짜 대-단한 기록들을 많이 세웠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행보를 알아보겠습니다.
독일대표팀
먼저 클린스만 감독은 2004년 만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타 공격수였던 그의 명성을 믿은 독일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그는 역시 전술과 전략은 2014년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요하임 뢰브" 코치에게 맡기고 팀워크를 강조하고 선수들과의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때도 재택근무 논란으로 한 차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클린스만의 독일 내의 위상은 엄청났고 자국 월드컵이라는 이점과 더불어 독일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클린스만이 이룬 성적은 꽤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때부터 전략과 전술은 부족한 감독이었죠. 클린스만 감독은 그렇게 "집에서 좀 쉴래"라고 말하면서 감독 직에서 물러났고 독일에서는 요하임 뢰브 감독을 승진시켰습니다. 독일축구협회에서는 클린스만의 공백은 전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역사스만
때는 2008년 독일 대표팀 감독직 사임 후 2년 뒤였습니다. 이때 추락하고 있던 바이에른 뮌헨의 개혁을 클린스만 감독에게 맡기면서 역사스만(온갖 바이에른 뮌헨의 안 좋은 기록을 만들어내서 생긴 별명)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경기로는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5:1로 참패를 거둔 경기가 있습니다. 이 당시 경기가 끝나고 클린스만 감독은 "이 대패의 경기조차도 나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라며 머릿속에 꽃밭이 가득한 인터뷰를 하여 논란을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경기는 바로 08-09 챔피언스리그 바르셀로나와 경기에서 나온 4:0 패배 경기입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정말 강한 전적을 갖고 있습니다. 무려 11승 2 무 2패로 웬만하면 안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근데 그중 1 무 1패를 클린스만 감독일 때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경기는 바이얼 04 레버쿠젠과의 DFB포칼컵 경기였는데 여기에서도 4:2로 패배를 당하며 그 당시 거함 바이에른 뮌헨에 무관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이후에는 바로 경질을 당하게 되었는데요. 웃긴 사실은 이 이후에 같은 스쿼드임에도 임시 감독으로 들어온 "유프 하인케스"감독이 클린스만 경질 후 4승 1무 무패를 기록하면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에서 핵심 수비수였던 필립 람은 인터뷰에서 "클린스만은 전술 훈련 없이 체력 훈련만 했다"라고 전했으며 추후 자서전을 통해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하고 6~8주 뒤에 그가 일을 하지 않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의 체력 훈련만 했다", "전술적인 문제들은 무시됐다", "우리 선수들은 우리가 어떻게 뛰어야 할지 선수들끼리 모여야 했다."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해줬습니다.
미국대표팀-Disaster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고 휴식을 취하던 클린스만은 2011년 7월 30일 미국 축가 국가대표팀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나름 오래 생활을 했고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도 월드컵 3위를 차지했었기 때문에 그를 선임한 것이었죠. 그 기대에 걸맞게 초반에는 꽤 좋은 성적을 보였습니다. 특히 브라질과 이탈리아 등 강호들을 연파했고 2013년 골드컵에서 파나마를 상대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2014 월드컵에서 독일, 포르투갈, 가나와 한 팀에 속해 죽음의 조가 형성되었지만 1승 1 무 1패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감독 계약이 연장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대표팀에서 뒷바라지를 하던 "요하임 뢰브"가 있었다면 미국 대표팀 시절에는 현재 대한민국 코치직에도 자리하고 있는 "헤어초크"코치가 있었습니다. 2016년 11월 22일까지 그 코치가 있었죠.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헤어초크 코치가 떠나자 클린스만의 무능력함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국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던 미국 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 예선에서 안 좋은 성적을 거두고 탈락을 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영국의 가장 공신력 높은 매체 "The Guardian"에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미국 대표팀 통치, 전술적으로 혼란스럽고 종종 당혹스럽다. 미국 대표팀은 여전히 일관된 스타일을 찾고 있다. 그들이 코파 아메리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지라도 이는 클린스만의 덕이 아닐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또한 "그저 가장 뛰어난 재능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베스트 일레븐에 일관성이 없다. 이는 어중간한 팀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팀이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밝혔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Disaster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헤르타 베를린- SNS 사임
특히 헤르타 베를린에서는 가히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 사건으로는 아들인 "조나단 클린스만을 위한 골키퍼 코치 경질" 사건입니다. 헤르타 베를린의 감독이었던 클린스만의 유스 클럽에는 그의 아들 골키퍼 유망주 조나단 클린스만이 있었는데 골키퍼 코치가 그를 그렇게 좋게 보진 않았습니다. 그런 사실이 클린스만의 귓가에 들렸고 이 골키퍼 코치를 생갈렌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생갈렌으로 보낸 뒤 그 코치를 경질시키는 이상한 짓을 벌입니다. 보내고 난 후 "안드레아스 쾨프케" 코치를 헤르타 베를린으로 영입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쾨프케코치가 독일 대표팀 골키퍼 코치도 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겸임이 안돼서 코치 영입에 실패하여 다시 유스 골키퍼를 콜업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감독 라이선스 만료 사건입니다. 감독 라이선스가 만료되어 감독으로서 벤츠에 앉을 수 없다는 기사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 라이선스와 관련된 서류가 미국시절 살던 캘리포니아 자택에 있다고 클린스만 감독이 주장했습니다. 그는 꼭 캘리포니아에서 찾겠다고 밝혔으며 결국 우여곡절 끝에 경기 몇 시간 전 겨우 자격증을 갱신하고 독일 축구 협회에서 지도자 라이선스를 인정받았습니다. 자칫하면 자격증이 없어서 감독직에서 내려올 수도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건은 그 유명한 SNS사임표명입니다. 처음부터 클린스만 감독은 SNS로 사임을 표명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헤르타 베를린 부임 후에 경기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런 비판을 쏟던 독일 매체들을 믿을 수 없던 클린스만 감독은 팬들 앞에 나서서 직접 왜 이렇게 경기를 운영하는지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방송을 하던 와중에 생각하던 반응이 아니라 악플이 쏟아졌고 마음이 상한 클린스만 감독은 무책임하게 아들이 있던 상갈렌으로 가게 됩니다. 독일의 가톨릭 계 정치가 빈트호르스트는 이례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하기도 하였는데요. "그의 행동은 마치 10대 아이와도 같았다", "이제 더 이상 그와의 협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무리
이렇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엄청난 역사를 돌아보았습니다. 독일의 유명 매체 빌트지에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놀라운 감독 복귀이다", "2020년 2월 헤르타에서 혼란을 일으킨 지 정확히 3년 만에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이미 독일에서는 최악의 대접을 받고 있는 클린스만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온다고 했을 때 결국 이런 참사가 일어날 것을 예상했던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빠른 경질을 통해서 대한민국 축구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이 클린스만을 선임한 대한민국 축구협회의 만행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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